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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인상주의의 창시자 인상파 대표화가 클로드 모네

by 르비쥬 2022.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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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의 창시자이며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 인상주의란 말을 탄생시키고 인상주의를 끝까지 지킨 인상파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모네는 대상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전통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빛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대상의 색과 형태를 포착하여 그림을 그렸다. 빛은 모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는 계절과 날씨, 시간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빛에 주목했고 모네의 평생에 걸친 예술적 목표는 이런 빛과 색의 변화를 포착하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네가 그리고자 한 빛은 인공적인 조명이 아니라 자연의 빛이었기에 그는 주로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렸고 자연의 생명력을 그림에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클로드 모네는 1840년 11월 14일 프랑스 파리 라피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영국의 항구 도시인 르아브르에서 보냈으며 그곳에서 풍경화가 부댕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부댕은 르아브르 남쪽의 옹플뢰르 출신으로, 바다 풍경을 주로 그리던 화가다. 소년 모네의 재능을 알아본 부댕은 그에게 함께 풍경화를 그리자고 제안한다. 모네는 부댕에게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며 자연광 묘사에 대한 기초적인 화법을 배운다. 아들이 화가가 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 대신 고모의 지원을 받아 1859년 19세 때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러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고모의 권유로 등록한 아카데미 쉬스에서 그의 첫 아내인 카미유를 만난다. 1860년 알제리에서 군 복무를 하다 1년 후 장티푸스에 걸려 전역 후 파리 르아브르로 돌아와 요양한다. 이후 샤를 글레르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며 뜻이 맞는 동료 쿠르베, 피사로, 르누아르, 바지유 등과 함께 어울리며 우정을 쌓고 이들의 우정은 훗날 새로운 미술의 움직임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모네의 첫 번째 아내 카미유는 아카데미 쉬스에서 모델과 화가로 처음 만났고 곧 사랑에 빠져 1870년 결혼한다. 모델이라는 천한 직업을 가진 카미유와의 결혼을 반대했던 모네의 아버지와 고모는 그에게 지원했던 생활비마저 끊어 버렸고 모네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카미유가 죽기 전까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 모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카미유는 젊은 시절 모네의 뮤즈였으며 그녀가 모델이었던 작품 중 '초록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살롱에 당선되어 주목받는다.

 

모네는 그의 동료 바지유, 르누아르 등과 함께 무명 예술가 협회를 만들어 전시를 열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바로 이전 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르아브르를 찾는다. 이때 르아브르 바닷가에서 그린 것이 인상주의의 대표작 '인상, 해돋이'이다. 1873년 모네를 필두로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화가, 조각가, 판화가 무명 예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카퓌신 대로에서 첫 전시를 열고 '인상, 해돋이'를 출품한다. 이 전시에 출품된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보고 저널리스트 르루아가 조롱의 의미로 '인상'만 그리는 '인상주의자'라고 비판한 것을 계기로 인상주의 자라는 용어가 탄생한다. 조롱의 뜻이 담긴 말이어서 처음에는 반감이 있었지만,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 일부는 이 단어가 자신들을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점차 자신을 인상주의자라고 불렀다. 이후 인상주의는 하나의 미술 운동으로 역사에 남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모네는 1876년 미술품 수집가인 에르네스 오슈제와 그의 아내 앨리스를 만나 작품을 의뢰받는다. 하지만 2년 뒤, 후원자이던 에르네스 오슈제가 파산하면서 벨기에로 잠적해 버리자 그의 아내 앨리스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여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모네를 찾아와 모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카미유는 둘째를 출산하면서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모네는 슬픔과 고통 속에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다. 이후 모네와 알리스는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점차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지내며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1883년 노르망디 지방의 지베르니라는 농촌에 정착한다. 모네는 죽기 직전까지 40여 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꿈에 그리던 정원을 가꾸고 이를 소재로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모네는 1890년 이후부터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는 연작을 많이 제작했다. 대표작으로 '수련'이 있으며 이 시기에 그린 작품은 대부분 지베르니의 정원을 소재로 한 것이다. 덕분에 지베르니는 그의 삶과 예술의 흔적을 간직한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다.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죽을 때까지 앨리스와 살았으며, 두 사람은 1892년 에르네스가 사망하자 재혼한다.

 

젊은 시절부터 바라왔던 곳에 집을 얻고 부유한 생활을 하지만 그에게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가난했던 시절 배고픔과 함께 뜻을 같이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모네도 건강이 나빠졌고 백내장에 걸렸다. 백내장으로 인한 시력 악화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빛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임종 직전 그의 작품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선의 모임처럼 보이지만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보인다. 전통적인 기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기법으로 인상주의를 만들어낸 그는 다른 예술가와 대중들에게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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