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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야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다재다능한 이탈리아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by 르비쥬 2022.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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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다재다능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건축가이자 조각가였으며 사람의 몸을 해부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수많은 인체를 표현하며 회화, 건축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천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인재로 평가받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 있다. 레오나르도의 그림은 전성기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이며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과학, 의학, 건축 등 많은 분야에서 후대에 도움이 되는 상당한 업적을 남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다. '빈치' 마을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는 사생아였으며, 그의 성도 '빈치에서 온'이라는 뜻으로 '다 빈치'를 썼다. 변호사 아버지와 평범한 농민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선 신분상의 활동 제약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어릴 때부터 수학, 음악, 회화 외 모든 학문에 있어서 다재다능함을 보였지만 당시 귀족 가문의 피를 물려받지 않은 사생아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대학에도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꼬마 시절은 어머니와 살았지만 대여섯 살이 되면서 아버지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레오나르도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피렌체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베로키오 공방에 보낸다. 그는 바닥 청소나 잔심부름 같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스승에게 그림 그리는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레오나르도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는 자기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에 그를 조수로 참여시킨다. 6년간 베로키오 공방의 수습생으로 있다가 1472년 20살이 되던 해에 피렌체 화가 조합에 정식 회원이 되고 1478년 26살에 독립하여 자신만의 공방을 열게 된다. 피렌체에서 독립적인 화가로 활동하면서 레오나르도의 뛰어난 그림 실력은 소문이 났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그림을 의뢰했다. 하지만 완벽주의적인 기질과 왕성한 호기심 때문에 기간 내에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그림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다빈치는 점점 가난해졌다.

그의 나이 서른살이 되던 해 피렌체를 떠나 도시 밀라노에 정착한다. 17년을 밀라노에 머물며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익혔고 이 시기에 만든 작품이 '최후의 만찬'이다. '최후의 만찬'은 1495년부터 1497년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원근법과 투시법을 활용하여 작품의 완벽한 질서를 표현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밀라노의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레오나르도는 잠시 베네치아에서 머물다 1500년 다시 피렌체로 돌아온다. 1501년 '성 모자와 성 안나' 제단화를 시작으로 수많은 연구 스케치와 관찰 기록을 남겼다. 그의 스케치에는 아직 세상에 없던 비행기나 헬리콥터에 대한 상상, 사람과 동물에 대한 해부도가 많았다. 화가는 해부학에 무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남녀 시체를 30구 넘게 해부하였고 인체 내부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스케치로 남겼다. 1503년에 피렌체 시청에 벽화작업을 의뢰받아 '앙기아리 전투' 작업을 시작하지만 완성하지 못한다. 또한 같은 해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진 '모나리자' 작업을 시작한다. 현재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윤곽선을 희미하게 처리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스푸마토 기법을 이용해 그렸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품이자 가장 가치 있는 미술품으로 평가된다. 1519년 프랑스 앙부아즈에서 세상을 떠난다. 죽을 때까지 그림을 손에 놓지 않은 그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 과학, 해부학, 천문학 등 다방면에 정통했으며, 직접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를 글과 스케치로 남겼다. 


예술가로서 위대한 업적들을 남긴 그였지만 관심이 미술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빛나는 탐구심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있었고 엄청난 실행력으로 시작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으며 탐구한 과정을 항상 노트에 기록했다. 그는 평생 끊임없이 실험하고 연구하였다. 이러한 레오나르도의 열정적인 성격은 그를 시, 작곡, 건축학, 철학, 수학, 물리학, 해부학 등 어느 하나 빠진 것 없이 능한 만능 인간으로 만들었고 자신을 소개할 때 화가라고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의 수기 노트를 보면 당시의 많은 실제 문제점과 하늘을 나는 장치나 자동장치같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그만의 과학적 관찰과 독창적인 해결책을 볼 수 있다. 그는 최초로 해부학을 체계화하여 생명공학의 초석을 세우고 오늘날의 항공기와 헬리콥터의 원리와 구조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현재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4분의 1만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그가 특별한 인간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엔 생각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도전정신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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