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미술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은 동굴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주 생생하게 잘 알 수 있겠지만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 시대라 우리는 남아있는 벽화나 조각상으로 그 시대를 추측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사시대는 기원전 7000년 전에서 기원전 수만 년 전 시대로 지금보다 최소한 만년 전 이상의 아주 오래전입니다.
글이 있기 이전 시대여서 어떠한 기록도 없기 때문에 그 시대 유물이라고 추측되는 것들로 그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살았는지 환경은 어떠했는지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발견되는 선사시대 미술품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동굴 속 같은 곳에서 발견됩니다.
대표적인 선사시대 미술품으로 라스코 동굴벽화와 알타미라 동굴벽화
그리고 빌렌도르프 비너스 조각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라스코 동굴벽화는 프랑스 남서쪽에 있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복잡한 동굴입니다.
이 동굴 안에 기원전 15000년~13000년으로 추정되는 벽화가 발견되었는데요
이 벽화에는 말, 들소, 사슴 등 여러 가지 동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라스코 동굴벽화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석기시대에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 벽화의 발견으로 석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비슷한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와 함께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19세기 말 발견되었습니다.
1879년 에스파냐의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후기의 벽화로 같은 종류의 동굴 벽화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벽면의 요철을 이용하여 적색과 흑색의 농담으로 입체감을 내고 들소와 멧돼지, 말,
사슴 등의 동물 그림을 벽면에 묘사할 때 점묘법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이야 아주 쉽게 그릴 수 있지만 선사시대에는 그림을 그릴 도구나 색을 내는 원료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 처음 발견됐을 때 이 벽화가 오래전에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린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발견될 당시에 사람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을 아주 미개한 원숭이 정도로 생각해서
그들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탄소 연대측정법 등의 기술이 발명되면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방사성 동위원소 탄소의 조성비를 측정하여 그 만들어진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탄소의 반감기를 활용해 5370년 주기로 대략적인 경과시간 추정이 가능하다)
이 벽화가 약 기원전 16000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증명되면서 사람들은 선사시대에도 이렇게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글이 있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벽화를 그렸고 우리는 지금 이 그림들을 미술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미술사 책들의 시작 부분이 선사시대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왜 선사시대 사람들은 벽에 그림을 그렸을까요?
또 그림과 함께 발견된 토기들이나 암각화 부조들은 대체 왜 만들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미술적, 예술적이라기보단 주술적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살아가기 위해 사냥을 해야만 했고 혼자보다는 여럿이 모여서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냥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동굴 이곳저곳에 사냥하는 그림을 그렸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니면 토테미즘처럼 자신의 부족과 각별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동물들을 그렸다고 보는 입장 있습니다.
(토테미즘 : 어떤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여 자신과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믿는 것)
또는 사냥을 나가기 전 동굴에 동물을 그려놓고 이곳에서 연습을 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확히 왜 벽화를 그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살기 위함의 한 행동이었던 건 맞는 거 같습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1909년 오스트리아 다뉴브강에 있는 빌렌도르프에서 철도 공사 때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여성 나상입니다. 크기는 11cm 정도이며 여성의 인체 묘사의 왜곡, 특히 생식과 관련된 과장되어 있는 묘사로 인해
우리는 이 조각상이 사실적인 인체의 모습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니라 생식과 출산, 다산의 상징으로
주술의 도구, 혹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래도 사람 한 명 한 명이 인력으로서 가치가 중요한 시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아님 어쩌면 이런 여성의 이미지가 그 시대에 미의 기준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남아있는 유물로 그 시대를 추측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집단을 이루어 살며 다산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미술은 미술시장과 관계없는 주술적 이유임으로 판단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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